옹벽에서 쏟아진 '물폭탄'에 차량 폐차, 비 탓이면 아파트는 책임이 없을까 [신동우 변호사 칼럼]

폭우가 쏟아진 날 아파트 옹벽 아래 세워 둔 차가 물에 잠겨 폐차됐다. 그런데 아파트 측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아이뉴스24가 유튜브 채널 '한문철TV'를 인용해 보도한 사연이다. 지난 8월 17일 아침 6시께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 옹벽 아래 주차장에서, 폭우로 옹벽 쪽에서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높이가 6m쯤 되는 곳에서 떨어진 물이 그 아래 서 있던 은색 세단을 덮쳤고, 차 안까지 물이 차 결국 차주는 차를 폐차해야 했다.
관리사무소의 입장은 이렇다. 동대표 회장과 당직 경비원이 폭우에 대비해 배수구 청소를 성실히 했고, 예측할 수 없었던 비 피해라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호우 재난문자가 여러 통 왔는데도 차주가 차를 옮기지 않았으니 차주 책임도 있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든 거제시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문철 변호사는 배수구 청소만으로는 부족하고 물을 아래로 안전하게 빼낼 배수관을 설치했어야 한다며 아파트 측 책임이 크다고 봤다.
비가 원인이면 누구 탓도 아닌가. 법은 이 질문에 생각보다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다.
1. 법이 묻는 것은 '비'가 아니라 '시설'이다
가. 공작물 책임의 구조
민법 제758조 제1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다. 점유자가 손해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다했다면 그다음에는 소유자가 책임을 진다. 옹벽, 배수구, 배수관도 모두 공작물이다. 아파트 단지 안 공용시설이라면 그 시설을 관리하는 쪽이 점유자로서 1차 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임에서 눈여겨볼 점은 소유자 책임에는 과실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점유자는 주의를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빠져나갈 길이 있지만, 소유자는 그런 항변을 할 수 없다. 다만 피해자도 할 일이 있다. 시설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
나. '하자'는 어떻게 판단하나
하자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대법원은 최근에도 이 기준을 다시 확인했다.
대법원 2025. 9. 26. 선고 2025다211711 판결
공작물의 하자가 사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가 되는 이상 손해는 그 하자로 생긴 것이며, 하자 여부는 설치·보존자가 위험성에 비례해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방호조치의무를 다했는지로 판단한다.
이 판결의 앞부분이 이번 사안에서 중요하다. 폭우라는 자연현상이 섞여 있더라도, 배수 시설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 사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라면 공작물 책임은 성립한다. 비가 많이 왔다는 사정만으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아파트 측 주장은 받아들여질까
가. "배수구 청소를 했다"
청소를 했다는 것은 관리 노력을 보여 주는 사정이지만, 그것만으로 하자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판단 기준은 '청소를 했느냐'가 아니라 '그 시설이 그 위치에서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췄느냐'이기 때문이다. 6m 높이 옹벽 아래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면, 비가 많이 올 때 그 물이 어디로 어떻게 빠지는지까지 고려한 설비가 필요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옹벽 위로 모인 물이 배수관 없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였다면 하자로 평가될 여지가 크다.
나. "예측할 수 없는 비였다"
불가항력 주장은 법원도 받아들일 때가 있다. 다만 그 문턱이 높다.
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1다48057 판결
100년 발생빈도 강우량을 기준으로 정한 계획홍수위를 넘는 600년 또는 1,000년 발생빈도의 강우에 의한 하천 범람은 예측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없는 불가항력적 재해로 보았다.
이 판결은 하천 범람에 관한 것으로, 수백 년에 한 번 올 비 정도는 되어야 불가항력이 인정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해마다 여름이면 집중호우가 반복되고 재난문자가 오가는 상황에서, 그 정도 비를 예측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오히려 아파트 측이 재난문자를 근거로 차주 책임을 말한다면, 그 비가 예측 가능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다. "차주도 차를 옮겼어야 했다"
차주 과실은 책임을 없애는 사유가 아니라 배상액을 줄이는 사유다. 민법 제763조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에 제396조의 과실상계를 준용한다. 다만 옹벽 배수구에서 많은 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 차주가 알기는 어렵다. 그곳이 정상적으로 주차가 허용된 자리였고, 새벽 시간대였다면 과실 비율이 크게 잡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3. 거제시는 어떤가
가. 영조물 책임이 따로 있다
관리사무소는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든 거제시 책임도 언급했다.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은 도로·하천, 그 밖의 공공의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가 생긴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배상하도록 한다. 주차장이 시가 설치·관리하는 공공시설이고, 그 주차장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었다면 시도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
나. 누구를 상대로 할지는 사실관계가 정한다
쟁점은 물이 넘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원인이 아파트 옹벽 위 배수 설비라면 아파트 측, 주차장 자체의 배수나 위치 선정이라면 시 쪽이 문제 된다. 둘 다 원인이 됐다면 함께 책임을 질 수도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옹벽과 주차장의 소유·관리 주체를 먼저 확인하고, 필요하면 양쪽을 모두 상대로 청구하는 방법을 검토할 만하다.
4.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면
가. 증거는 비가 그치기 전에
물이 어디서 어떻게 쏟아졌는지는 비가 그치면 다시 보기 어렵다. 현장 사진과 영상, 차량 블랙박스, 주변 CCTV를 바로 확보한다. 배수구와 배수관의 위치, 막힘 여부, 옹벽 위로 물이 모이는 구조도 사진으로 남겨 둔다. 관리사무소와 주고받은 대화나 문자, 해당 시간대 강수량 자료도 하자와 예측 가능성을 다툴 때 쓸모가 있다.
나. 보험과 청구 순서
자기차량손해 담보에 가입돼 있다면 보험으로 먼저 수리비나 차량가액을 받고, 보험사가 아파트 측이나 시를 상대로 구상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자기부담금이나 보험으로 보전되지 않는 손해는 직접 청구할 수 있다. 아파트가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이 있는지도 관리사무소에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다. 시효를 놓치지 않는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 책임 공방이 길어지더라도 기한을 염두에 두고 내용증명이나 소송 제기 시점을 정해야 한다.
5. 맺으며
기후가 달라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비'라는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집중호우가 반복된다면, 시설이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의 기준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옹벽 아래 주차장처럼 물이 몰리는 자리는 청소를 넘어 물길 자체를 설계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비를 탓하기 전에 시설을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법이 공작물 관리자에게 요구하는 몫이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사진: miamibrickell, CC0 퍼블릭 도메인(Flickr·Openve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