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린 뒤 옷을 살펴보니 패딩 겉감이 길게 찢어져 하얀 충전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안에 받쳐 입은 니트에도 구멍이 나 있었다. 뉴스1은 29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한 한 승객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런 사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글쓴이는 처음에는 어디에 걸린 줄 알았지만 옷 상태를 보니 누군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긋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몰리는 출근길에 옷이 아니라 몸이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두려움을 털어놓았고, 경찰에 신고하면 CCTV를 확인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댓글에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물려받은 모피코트 등판이 커터 칼로 그은 듯 길게 찢겨 있었다는 경험담도 있었다. 다만 기사에 따르면 이 승객의 옷이 어떤 경위로 훼손됐는지, 누군가 고의로 그은 것인지 다른 물체에 걸린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위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특정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 일부러 남의 옷을 그었다면 어떤 책임을 지는지, 피해를 본 사람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 남의 옷을 그은 행위, 어떤 죄가 되나
가. 기본은 재물손괴죄다
형법 제366조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입고 있는 옷도 당연히 타인의 재물이다. 겉감을 찢어 충전재가 빠져나오게 했다면 옷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므로 손괴에 해당한다. 피해 금액이 크지 않다는 사정은 형을 정할 때 참작될 수 있을 뿐 죄의 성립을 막지 못한다.
나. 칼을 들고 했다면 특수손괴죄
칼이나 커터 같은 날붙이를 사용했다면 죄명이 달라진다. 형법 제369조 제1항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재물손괴죄를 범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정형의 상한이 높아질 뿐 아니라 공소시효도 길어진다.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에 따라 단순 재물손괴죄는 5년, 특수손괴죄는 7년이다. 붐비는 열차 안에서 날카로운 물건을 휘두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주변 승객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어서, 수사와 재판에서도 가볍게 다뤄지기 어렵다.
2. 법원은 '효용을 해한다'는 말을 넓게 본다
가. 대법원의 판단
손괴라고 하면 물건이 부서지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법원은 물건을 본래 쓰임대로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까지 넓게 보고 있다.
대법원 2021. 5. 7. 선고 2019도13764 판결재물의 효용을 해한다는 것은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거나 구체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이 사건은 남의 차량 앞뒤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굴삭기 부품을 바짝 붙여 17~18시간 동안 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사안이었다. 차에 흠집 하나 없었지만 대법원은 재물손괴죄를 인정했다. 판결은 효용을 해했는지를 따질 때 재물의 용도와 기능, 원상회복의 어려움과 비용, 이용자가 느끼는 불쾌감이나 저항감까지 함께 보라고 했다.
나. 이번 사안에 대입하면
물건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도 손괴가 될 수 있다면, 옷감을 찢어 충전재가 빠져나오게 하고 안에 입은 옷까지 구멍을 낸 행위가 손괴에 해당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적다. 수선을 하더라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고, 누군가 칼을 댄 옷을 다시 입고 싶지 않은 피해자의 감정도 판단 요소가 된다. 결국 쟁점은 죄가 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도구로, 일부러 그랬느냐를 증명하는 데 있다.
3. 몸에 닿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 상해와 특수상해
글쓴이의 말처럼 날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다면 옷이 아니라 사람이 다쳤을 것이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경우 형법 제258조의2 제1항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벌금형이 없다. 같은 조 제3항은 그 미수범도 처벌한다. 몸을 노리고 휘둘렀는데 다행히 옷만 찢어졌다면, 사정에 따라 재물손괴를 넘어 특수상해미수가 문제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인지는 행위자가 무엇을 노렸는지, 어떤 도구를 어떻게 썼는지에 따라 갈린다.
나. 실수였다면 형사처벌은 어렵다
반대로 가방 장식이나 우산 끝에 걸려 옷이 찢어졌다면 사정이 다르다. 형법은 재물손괴를 고의범으로만 처벌하고 과실로 남의 물건을 망가뜨린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때에는 민사상 손해배상만 문제 된다. 이번 사안처럼 경위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고의를 증명할 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4. 피해를 입었다면 지금 할 일
가. 옷부터 그대로 보관한다
찢어진 옷은 가장 중요한 증거다. 세탁하거나 수선하기 전에 찢어진 부위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옷은 그대로 보관한다. 절단면이 칼에 베인 것처럼 매끈한지, 걸려서 뜯긴 것처럼 거친지는 고의를 가르는 단서가 된다. 탑승한 역과 시각, 갈아탄 노선, 탄 칸의 위치, 주변에 있던 사람의 인상착의를 기억나는 대로 바로 적어 둔다. 교통카드 이용 내역도 탑승 시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된다.
나. CCTV는 서둘러야 한다
역사와 열차 안 영상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워진다. 피해를 알아챈 즉시 경찰에 신고해 수사기관이 영상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에 따라 자신이 찍힌 영상의 열람을 운영기관에 직접 요구할 수도 있지만, 다른 승객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열람이 제한될 수 있다. 신고를 미루다 영상이 지워지면 범인을 찾을 길이 사실상 막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 배상은 어떻게 받나
가해자가 특정되면 옷값이나 수선비를 청구할 수 있고, 몸까지 위협받은 사정이 있다면 정신적 손해도 함께 주장해 볼 수 있다. 별도로 민사소송을 내는 방법도 있지만, 형사재판이 열리면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의 배상명령을 신청해 형사판결과 함께 배상을 명받을 수 있다. 재물손괴를 포함한 손괴의 죄는 배상명령 대상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가해자를 모르는 동안에는 3년이 흐르지 않지만, 늦게 찾을수록 증거는 흐려진다.
라. 혹시 의심받는 입장이라면
혼잡한 열차에서는 가방이나 소지품에 남의 옷이 걸리는 일이 실제로 생긴다. 억울하게 지목됐다면 당시 가지고 있던 물건과 동선을 설명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고, 감정적으로 다투기보다 영상 확인을 요청하는 편이 낫다. 실수로 옷을 망가뜨렸다는 점이 분명하다면 형사처벌은 피할 수 있어도 배상 책임은 남으므로, 피해자와 원만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
5. 맺으며
옷이 찢긴 피해는 금액만 보면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출근길 열차에서 누군가 날붙이를 들고 사람 사이를 오갔다면 다음 피해는 옷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했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 것은 그동안 피해가 신고되지 않고 묻혀 왔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피해자는 옷값이 아깝지 않다는 이유로 넘기지 말고 신고해 기록을 남겨야 하고, 운영기관과 수사기관은 반복되는 신고를 하나로 묶어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손괴 사건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이 더 큰 사고를 막는 길이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31.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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