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30만 명을 둔 인플루언서가 지인들에게서 수억 원을 가로채고도 "돈 안 줄 거다", "민사 소송에 걸린 채로 평생 살겠다"고 말했다는 사연이 최근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에 소개된 내용을 보도한 뉴시스 기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7년 전쯤 옷가게 손님으로 알게 된 피해자에게 증권사에 다니는 '친오빠'가 있다며 2주만 맡기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투자를 권했다.
처음 몇 번은 약속한 날짜에 이자가 들어왔다. 믿음이 쌓이자 투자금은 늘었고, 기사는 이를 돌려막기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피해자 이름으로 증권 계좌를 만들어 계좌 화면을 조작하기도 했고, '친오빠'는 실제로는 내연 관계의 남성으로 두 사람이 함께 꾸민 일이었다. 의뢰인의 피해액은 4억8천만 원, 또 다른 피해자는 7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이 여성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살고 나왔지만, 출소 1년도 안 돼 인플루언서로 돌아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감옥에 다녀왔으니 빚도 끝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평생 소송 걸린 채로 살겠다"는 말이 허세로 끝나게 하려면, 피해자 쪽에서 밟아야 할 절차가 꽤 많다.
1. 형을 살았다고 빚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 형사처벌과 민사책임은 따로 간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절차이고, 피해금을 돌려주는 절차가 아니다. 현행 형법 제347조는 사람을 속여 재물을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사람을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징역을 다 채웠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진 손해배상 채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형기는 끝나도 채무는 그대로 남는다.
오히려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실은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형사 판결문에 적힌 범행 경위와 피해액은 민사 법원이 사실을 판단할 때 중요한 증거가 된다. 사기를 당했다는 점을 처음부터 다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나. 시간이 가장 큰 적이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한다. 형사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3년을 넘기는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다. 가해자가 "평생 버티겠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시효를 노린 계산일 수 있다.
반대로 판결을 받아 두면 상황이 달라진다. 민법 제165조에 따라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소멸시효가 10년이 된다. 그 10년이 끝나 갈 무렵 시효를 잇기 위해 다시 소를 내는 방법도 실무에서 쓰인다. 피해자가 손을 놓지 않는 한, 버티기만으로 빚을 없앨 수는 없다는 뜻이다.
2. "돈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절차
가. 먼저 집행권원을 손에 쥐어야 한다
강제집행을 하려면 확정판결이나 지급명령 같은 집행권원이 있어야 한다. 형사 판결문, 송금 내역, 이자 명목으로 받은 돈의 기록, 주고받은 메시지를 정리해 손해배상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받은 '이자'는 투자금에서 빼고 실제 손해를 계산해야 다툼이 줄어든다.
나. 재산명시와 재산조회
판결을 받고도 상대가 "가진 게 없다"고 하면 민사집행법 제61조에 따라 법원에 재산명시를 신청할 수 있다. 채무자는 법원에 나와 재산목록을 내고 선서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나오지 않거나 목록 제출이나 선서를 거부하면 같은 법 제68조에 따라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해질 수 있고, 거짓 재산목록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제출된 목록만으로 부족하면 같은 법 제74조의 재산조회로 넘어간다. 법원이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등에 채무자 명의 재산을 한꺼번에 조회하는 절차다. 본인 명의로 남은 예금, 부동산, 자동차가 이 단계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다.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판결이 확정된 뒤 6개월 안에 갚지 않으면 민사집행법 제70조에 따라 채무불이행자명부에 올려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명부 등재는 금융거래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공개 활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압박이 된다.
3. 인플루언서의 수익도 압류할 수 있다
가. 광고비와 정산금은 채권이다
팔로워 30만 명의 계정이 있다면 광고·협찬 대금이나 플랫폼 정산금처럼 누군가로부터 받을 돈이 생긴다. 이런 돈은 채무자가 제3자에게 가진 금전채권이므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느 회사와 협찬 계약을 맺었는지, 어떤 플랫폼에서 수익을 정산받는지는 게시물과 공개 자료에서 상당 부분 짐작할 수 있다. 피해자가 직접 활동 내역을 캡처해 두는 일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나. 재산을 빼돌리면 또 다른 범죄다
수익을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돌리는 일도 흔하다. 형법 제327조는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하거나 허위의 채무를 부담해 채권자를 해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숨긴 대상이 실제로 강제집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재산이어야 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4도9442 판결강제집행면탈죄의 객체는 채무자의 재산 중에서 채권자가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이나 보전처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고소를 검토할 때는 빼돌린 재산이 무엇이고, 그것이 원래 압류할 수 있는 재산이었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명의를 옮긴 시점과 판결·소송 진행 시점을 맞춰 보는 것도 필요하다.
4. 피해자가 지금 해야 할 일
가. 형사절차가 아직 진행 중이라면
비슷한 피해를 입고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형사재판 과정에서 배상명령을 신청하는 방법을 먼저 검토할 만하다. 피해액이 특정되면 형사 판결과 함께 배상을 명받을 수 있어 별도 민사소송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상대가 재산을 처분하기 전에 가압류를 걸어 두는 것도 이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돌려막기형 사기는 피해자가 여럿인 경우가 많아, 먼저 움직이는 쪽이 회수 가능성을 높인다.
나. 이미 형기가 끝났다면
판결문 사본부터 확보하고,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을 기준으로 시효가 얼마나 남았는지 따져야 한다. 아직 집행권원이 없다면 서둘러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진행하고, 이미 있다면 재산명시와 재산조회, 채권압류를 순서대로 밟는다. 상대가 파산을 꺼내 들 수도 있지만,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 제3호는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면책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사기로 인한 배상 책임이 파산 한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피해자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5. 버티는 사람보다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
"돈 없으니 법대로 하라"는 말은 법을 잘 모르는 피해자를 지치게 하려는 말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법은 판결을 받은 채권자에게 재산을 찾아내고, 숨긴 재산을 문제 삼고, 수입원을 압류할 수단을 상당히 마련해 두고 있다. 문제는 그 절차가 피해자의 손으로 하나하나 신청해야 움직인다는 데 있다. 형사처벌로 정의가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시효는 흘러간다. 피해 회복은 판결문을 받은 그날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보는 편이 맞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1. 4.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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